사람 냄새 나는 행정사, 조현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위해 행정사사무소 대표 조현기 행정사입니다. 의뢰인분들께서 궁금해하실 '조현기 행정사'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조현기
그리고 우리가족
저는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지금은 인천에 살고 있고, 2025년 3월 21일, 제 딸의 첫 번째 생일에 맞춰 제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그날은 단순한 ‘개업일’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걸어가는 길’을 처음 시작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더 일찍 개업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딸아이의 생일과 맞춰서 더 의미있게 개업하고 싶었습니다.
'위해 행정사사무소'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행복 행정사사무소는 어떨까?

저희 딸아이의 태명은 '행복이'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누군가 물어본다면 저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얘기해왔습니다. 그래서 행복이로 지었어요. 행복하게 살라고.


또 이 자리에 있기까지 대학시절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위해(威海, 웨이하이)의 교환학생 생활이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위엄 위, 바다 해로 직역을 할 수 있어 우직한 사람이 있는 사무실로, 고객들을 위해 업무를 한다는 뜻도 되고, 제 가정을 위하는 사무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미팅을 하게 되면 중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의뢰인분들과 추억을 공유하거나 더 나아가서 협업할 일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재도 1년에 2~4회씩 중국을 여행하고는 합니다.

주로 꼬냑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곤 하는데요,
어찌나 제가 즐겨 듣는지
중국어를 잘 모르는 아내도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심지어 광동어인 노래입니다 ^^;
걸어온 길
행정사는 법률과 행정의 경계에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전에, 한 사람의 상황을 함께 이해하는 조력자이고 싶습니다.
저는 책상보다 현장을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전국적으로 위로는 파주부터 아래로는 마산까지 영업을 하면서 한국이 저를 품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결국 중국에서 전 세계를 누비는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늘 ‘결정’의 순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법률을 공부한 건 아니었지만, 여러 현장에서 사람의 말, 행동, 고민의 무게를 직접 체감하며 살아왔습니다.
LG하우시스에서 영업을, 중국동방항공에서 승무원을, 중국과 연계하여 사업도 해봤습니다. 다양한 경험들은 결국 저를 한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법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누군가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직업,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진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행정사 조현기’입니다.
나의 첫 번째 회사생활
LG하우시스
LG하우시스에서는 입사 당시 새로이 신설된 온라인영업팀에서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LX하우시스로 바꼈죠.


홈쇼핑, 입점몰, 자사몰을 통해 고객에게 직접 제품을 소개하고, 계약부터 시공, A/S까지 영업의 전 과정을 혼자서 책임지는 구조였습니다.
한번은 시공 후 문제가 발생한 고객님께서 화가 나셨고, 저는 담당자로서 현장을 직접 찾아가 문제를 확인하고 품질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자주 현장을 방문하였고 소장님들과 업무 끝나고 막걸리나 소주로 마무리하고는 하였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본사직원이 이렇게 현장까지 나와서
애로사항을 들어주는 건 현기씨가 처음입니다.
현장은 물론이고 경기도 광주, 청주 등에 있는 공장까지 가서 긴급건을 직접 운전해서 공수하는 등 일을 끝까지 마무리했습니다.
여기에서 인연은 끝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현장 소장님의 애사에 참석하여 위로를 해드리기도 하였습니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 경험은 지금도 제 업무 원칙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상무님께 1년이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표창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LG하우시스에서 퇴사한 후, 제 커리어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는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시죠. 저 역시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중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사내 게시판에 올라오는 미국 주재원 파견 공지를 보면 파견 대상자는 대부분 고기능소재, 표면소재 등 공대 출신 인재들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영업팀에서는 상무님, 과장님조차도 파견 사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없겠구나"
그래서 과감히 결정을 내렸습니다.
젊은 날, 누구나 한 번쯤은 품는 ‘내가 있는 이 자리 말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그 마음을 저는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나의 두 번째 회사생활
중국동방항공
이후 저는 중국동방항공(中国东方航空)에서 객실승무원으로 근무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어릴 적부터 승무원이 꿈이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분명하게 원했던 건, 중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방향을 찾던 어느 날
우연히 중국동방항공 한국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취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현실(은행)과 이상(중국 근무)에서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홍대에서 주로 기업을 담당하는 기x은행 최종면접 스터디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터디 중간에 중국동방항공 1차 서류합격 문자를 받았고 그 길로 스터디를 뒤로하고 바로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웃기기도 해요. 미쳤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려 4차까지 이어지는 면접에 도전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간절했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면접장에 들어섰습니다.
1차, 2차 면접은 한국 임직원들과의 면접이었고,
3차, 4차 면접은 중국 본사 객실승무부서에서 영어 또는 중국어로 진행되는 인터뷰였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고, 그때 무슨 정신으로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한 번의 지원으로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저는 이 말이 허황된 말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했고, 지금도 행정사로서 간절하니까요.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그게 통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어, 영어 통역부터 기내 안전, 응급상황 담당까지 모두 제 몫이었죠. 여기서 배운 건 ‘표정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읽는 힘’, 그리고 ‘섬세하게 대응하는 태도’였습니다.


중국동방항공 한국인 승무원은 아직까지도 '시니어리티'가 있는 회사예요, 하지만 이러한 엄격한 곳에서도 선배였던 분들과 아직도 연락을 꾸준히 주고 받고 술 한 잔 기울이고 있습니다.
보고있나 정x웅? (선배님..ㅎ)

매달 외국승무원 평가 상위 10% 안에 들었던 이유도 ‘일을 잘해서’보다는, 제가 먼저 웃고 먼저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행기 안은 좁고 긴장된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불안이나 요청을 미세하게 알아채는 힘, 지금도 그 능력은 행정사 일에서 엄청나게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동방항공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제 마음속엔 조금씩 새로운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직접 조종해보고 싶다

그렇게 저는 파일럿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지만 저는 단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시뮬레이터 장비를 직접 구매하기도 했고, 실제 시뮬레이터 체험도 수차례 진행했습니다.
서울의 한 PC방에서는 파일럿 준비생들과 함께 국내 제주항공 부기장님께서 서포터 해주셨는데, 스터디도 꾸려가며 열심히 준비했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지원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한국항공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모든 전형에는 비용이 발생했는데요.
인적성 검사, 시뮬레이터 평가, 영어 면접 참석 비용, 신체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화이트카드’ 발급 비용 등 이 모든 게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꽤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설령 교관과정에 합격하더라도 면장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당시 1.2억~1.5억이나 되는 돈이 예상됐기 때문에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는 일’이 때로는 치열하고 냉정하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던 것 같아요.
결국 저는 파일럿의 꿈을 현실로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아깝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정말 진심이었고, 그 열정과 도전이 있었기에 지금의 ‘단단한 나’가 만들어졌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얼마 전엔 무심코 배우자에게 “파일럿의 ‘파’자만” 꺼냈다가 거실 분위기가 아주 조용해졌던 귀여운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그만큼 저에게는 그 시절이 도전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없는, 젊음의 빛나는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를 타는 승객이 되었지만, 그때 품었던 비행에 대한 마음과 시선은 제가 행정사로서 고객님의 인생의 여정을 함께할 때도 항상 잊지 않고 품고 가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도전은 결과보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던 경험입니다.
조현기 행정사
행정사를 선택하기까지
저는 오랜기간 행정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모든 경험들이 저를 이 길로 자연스럽게 데려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몇 년 전, 저에게 꽤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민사 관련 분쟁을 겪게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법이 사람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처음으로 피부로 느끼게 됐습니다.
그 소송은 복잡하고 길었고, 감정적인 소모도 컸습니다. 단순히 ‘이긴다, 진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생계와 자존심, 그리고 삶의 방향이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법은 멀고 차가운 게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 가까이에 있는 것이구나.
이후 자연스럽게 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누군가의 억울함을 덜어주는 일'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가까운 지인이 외국인 고용과 관련된 문제로 비자 발급을 알아보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행정적인 절차 하나 때문에 일을 이어가지 못하는 현실이었죠.
행정사라는 자격이 있더라고.
이런 걸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출처 입력
그 한마디가, 제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행정사는 법률지식과 행정 실무를 결합해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때로는 누군가의 삶에 아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직업이더군요.
제가 직접 움직이는 조력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행정사는 법조인이나 공무원과는 또 다른 위치에서
현실과 제도 사이를 연결해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늘 현장에서, 사람 가까이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막막한 순간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복잡한 서류와 절차에 부딪힐 때,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위축될 때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조용히 옆에 앉아 방향을 짚어주고, 함께 가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저는 그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으로서요.
나의 현재 그리고 미래
위해 행정사사무소
이어지는 글에는 사진을 넣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갈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의 저는, 조현기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의뢰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행정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에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바로 고객 여러분의 고민, 결정, 인생의 한 장면이 저와 함께 만들어갈 ‘다음 사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정의 빈 사진에는 저 혼자가 아니라, 고객님과 함께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신뢰입니다.
정확하게 말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괜찮은 선택과 아닌 선택을 함께 구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서류는 남지만, 결국 사람은 그 과정을 기억합니다
저는 고객님의 상황을 충분히 듣고, 문제의 본질을 함께 고민하고, 단순 대행이 아니라 해결까지 나아가는 길을 제안하겠습니다.
지금은 인천을 기반으로 전국 단위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람 냄새 나는 행정사로 남고 싶습니다
이력이 있다고 해서 ‘능력’이 입증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먼저 배웠습니다.
영업 현장에서,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지금 서류와 마주한 자리에서까지 저는 항상 한 가지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일은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그 안엔 삶이 담겨 있다."
혹시 지금,
어떤 서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신가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방향이 필요하신가요?
아니면,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신가요?
그렇다면 조현기가 그 자리에 있겠습니다.
무거운 문제도, 가벼운 마음으로 나눌 수 있도록 편하게 연락 주세요.
제가 먼저 진심을 다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현기입니다.

인천광역시 서구 중봉대로 588 1103-A07호


